남간정사 봄 풍경

||1바이런님이 올리신 사진보고서 오전에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4호 (동구)
명 칭 : 남간정사(南澗精舍)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9.03.18
소 재 지 : 대전 동구 가양동 65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송영달
관 리 자 : 송영달
상 세 문 의 : 대전광역시 동구 문화공보실 042-250-1225
일반설명 | 전문설명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은 것이다. 우암은 소제동에 살 때 서재를 짓고 능인암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하였다.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는데,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깊은 곳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편 뒷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계곡의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경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다.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기국정이, 뒷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또한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이 맞은편 언덕에 있다.
송시열과 관련된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조선시대 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낮은 야산 기슭의 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배경으로 하여 위치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후기의 대유학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 1607∼1689) 선생이 강학(講學)하던 유서깊은 곳이다. 선생은 송갑조(宋甲祚)의 셋째 아들로서,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촌의 외가에서 출생하였으며, 여덟살 때부터 송이창((宋爾昌) : 동춘당 송준길의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22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상을 마친 그는 연산(蓮山)에 은거하는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하였다. 사계는 율곡의 으뜸가는 제자로서 예학의 제1인자이며, 선생은 이로써 율곡의 학통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었다. 선생이 소제((蘇堤) : 동구 소제동)에 살고 있는 동안 흥농촌(興農村)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能仁庵)이라 하였고,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남간정사를 지었다. 선생은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 그의 학문을 대성하기도 한 곳이다.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정원조 경사에 있어서 하나의 독특한 경지를 이루게 한 조경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 있는 기국정은 소제동에서 일제시대초에 이건(移建)한 것이고, 뒷편의 언덕에 있는 남간사(南澗祠)는 후에 건축된 것이다. 또 이곳에서 한말에 유림의 발의로 선생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宋子大全 木板)을 조성하였는데, 이 목판은 남간정사 맞은편 언덕에 장판각(藏板閣)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까망/鄭相殷 님의 최근 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0 09.15 에구...TV속에 제 얼굴이 나오니 말도 이상한것 같더군요...ㅡㅡ;; 혹시라도 족발먹고 싶으시면 전화주삼...친절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ㅎㅎ 2010 08.20 축하드립니다...그리고..돈 많이 버세요...^^ 2010 05.19 올해는 함께 하지 못해 서운했었는데... 옛풍님께서 올려주신 사진으로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제 가슴속에 오는 것 같습니다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내년 전시회를 기약하겠습니다...^^ 2010 04.13 4월 17일 ~ 18일 2일간 뿌리공원에서 "제2회 효문화 뿌리축제"가 열려 참석할수가 없네요...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2010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