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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늘아, 나도 명절이 무섭다.

    • Profile
      • hans
      • 2012.09.28 - 13:42 2012.09.06 - 08:48 1633 3

    이 글은 작년에 모 신문에 기고된 글 인데 내용이 좋아 스크랩한 것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읽어 보실만 할 거 같아 올립니다. 아직 추석까지 여유가 있지만

    한가위 보름달 처럼 밝고 즐거운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글을 읽다가 옮겨 왔습니다.)

     

    며늘아, 나도 명절이 무섭다

    영감 잘 지내슈?

    여기는 시방 추석 명절이 콧등이라 어수선 하다우.

    세월이란 놈은 왜 이리도 씽씽 달리는지. 입만 청춘인 안동댁은 뜀박질 흉내를 내면서는 ‘우산 뽈트 달려가 듯 세월이 간다’고 하더이다.

     

    ‘우산 뽈트’가 뭔지 영감은 아슈?

    또 그놈의 청승이라고 하겄지만. 내가 오늘은 이바구 좀 해야것소.

    그 까짓 갱년기 국물에 말아먹은 지 십수년이고, 하루하루 숨 붙여 사는 것도 기특한 칠순 늙은이가 암만해도 우울증에 걸렸나 보오.

     

    해 저물녘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허구한 날 바람이라 내 속을 숯검댕이로 태운 영감탱이. 산송장이라도 좋으니 아랫목에 좀 더 뭉개다 가지 그새 갔나 싶습디다. 노망이 맞지요?

    어제는 웬수 같은 천식이 불같이 도져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엘 갔댔지요. 혼자 동그마니 앉아서 진료를 받으니 의사가 물어요. “보호자는 안 오셨나요?” 병원을 돌아 나오는데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가관이데요. 축 처진 볼에 기역자로 굽은 등이 마귀할멈이 따로 없어. 팔뚝엔 또 염치도 없이 거뭇거뭇 저승꽃이 피어서는, 왕년의 강숙자, 그 대찬 기운은 어디로 갔는가 서글퍼집디다.

     

    그래도 추석이니 자식들을 만나 좋다고요? 좋지요. 햇살 같은 내 손주들이 좋지요. 자식들은 어려워요. 그네들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 그런가. 해가 갈수록 말 붙이기도 힘드네요. 대문간 들어설 때부터 내가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본다면 말 다했지 뭐유. 귀성길 차안에서 다투진 않았는가. 그까짓 차례가 뭐라고 돈 버느라 피곤에 전 아이들을 예닐곱 시간씩 고속도로에 갇히게 한 건 아닌가, 미리미리 음식장만해놔야지 서둘렀어도 차례상 올리기 직전까지 잡일이 넘쳐나니 며늘애들 눈 맞추기 면구스럽고, 짜증도 나고요. 명절은 1년에 한번만 치르면 안 되는 건지 염라대왕한테 좀 물어봐쥬슈.

     

    지난 설엔 둘째 며늘애가 ‘기름진 명절 음식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하세요?’ 하는 떼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디다. ‘누가 먹긴 누가 먹어, 니 남편이 먹고 니 자식들이 먹지 이것아!’ 소리가 목울대를 넘어 오는데, 꼴깍 삼켰지요. 서울 올라갈 땐 동그랑땡 하나 안 남기고 들기름에 참깨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주제에 먹다 남은 과일까지 죄다 싸주면 그제야 얼굴이 뽀얗게 펴져서는 “어머니 또 올께요옹-”하고 자동차에 낼름 올라타는데 얄미워 죽것어요. 이래저래 퍼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시에미는 김치 한 가지에 물 말아 먹기 일쑤라는 것은 자식들은 알까요. 나도 뒷집 장성댁처럼 김치 담그고 고추장 담가 보낼 때 택배비에 수공비까지 에누리 없이 받아낼까 고심 중이라오. 삼팔광땡 시어머니 만난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기는 안 그러우?

     

    그래도 몇 살 더 먹었다고 큰 며느리는 이 시에미 시중을 아는 것도 같습디다. 그 목석같던 며늘애가 음식 몇 가지는 알아서 만들어도 오고, 말끝마다 ‘무릎도 아픈데 좀 앉아 계세요’ ‘어머니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하는 소릴 다 알 줄 알고요. 일면식도 없는 처녀들이 느닷없이 전화 걸어 ‘고객님 사랑합니다.-’해도 가슴이 뭉클한 데, 며늘애한테 그 비슷한 소릴 들으니 마음이 다 울컥합디다. 더러 못된 시어머니도 있겄지요.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시어어미도 가다가 있겄지요. 암만 그래도 배 속에서부터 며느리 괴롭히려고 작심하고 태어난 사람 있겄어요? 유세를 부려봤자 한물간 권력이요. 낼 모레 저승길 떠날 신세인데 해교로 좀 봐주면 안 되나요? 제 아들 굶기나 싶어 며느리 집 냉장고 단속하는 시어머니도 별로지만, 명절이라면 도끼눈부터 뜨는 유식한 여자들도 격은 없어 보입디다. 허구한 날 어린 자식 쥐 잡듯하는 저희는 얼마나 민주적인 시어머니 될란가. 저승 가서 지켜볼라고요.

     

    그러게 물려줄 땅이라도 좀 있었으면 나도 큰소리치고 살 것 아니유. 살아 생전 뭐 하고 싸돌아다니느라 밭 한 뙈기 못 사놨수. 거두절미하고, 저승길에 무사히 갔거든, 백수 된 우리 셋째 좋은 직장 구하게 해달라고 염라대왕한테 빽 좀 써보슈. 마흔이 코앞인데 여태 제짝 못 찾은 우리 딸내미, 주름살 늘지 않게 틈날 때마다 좀 굽어살펴주시오.

    참, 올 추석은 큰 아들네가 콘돈가 뭔가 하는 데서 지낸답디다. 음식은 저희가 장만할 터이니 날더러는 맨몸으로 오랍디다. 우리 손주들 좋아하는 깨송편 만들어서 이고 지고 갈라고요. 영감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찾아오시오. 새로 난 경춘 고속도로가 빠르다 하니, 알토란 같은 손주들 보고자프면 우산 뽈트처럼 씽씽 달려오시오. 날아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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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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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내사
      2012.09.06 - 16:33 #609113

      쓸쓸하네요...

    • Profile 0
      slrgolfer
      2012.09.07 - 10:16 #609117

      그러고 보니 곧 추석이군요.

       

    • Profile 0
      infree™-秀珉
      2012.09.28 - 13:42 #609283

      이제서야 읽었네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양가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신경쓰고 말한마디 더 애틋하게 해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 이런 글로 인해 철이 좀 더 들어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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