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카메라
가슴이 찡해지는 잔잔한 감동이 있어 같이 읽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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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생입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올해 복학해서 지금 3학년을 다니는, 대학생입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느껴보는 매력적인 유혹. 사진.
나 또한 새로운 제 3의 눈을 만나는 그 사진에 오래전부터 한 번 빠져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대 후 몇 달동안의 아르바이트로 제법 큰 돈을 모으고,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니 뭣 하나쯤은 나를 위해 쓰자 결심하고 구입한 것이 니콘의 디카 5700. 처음 카메라를 구입하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극구 반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도 젊은 시절 취미삼아 사진을 하셨었는데, 그건 도대체 한 번 들어서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속이 상했지요. 이제 다 큰 성인인데, 그런 것 하나 스스로 관리하지 못할까 싶어 그렇게 간섭을 하시나 싶어 괜히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D30을 들고 여기 저기 랜즈를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후회한다는 건 아니구요.
아버지께는 젊은 시절 공무원을 그만두시며 받은 퇴직금을 털어 사진 수동카메라가 있습니다. 집안 장롱 깊숙히 들어있는 카메라. 지금은 고장 나서 쓰지 못합니다. 그 범인은 물론 나. 계곡으로 소풍을 갔을 때 그 카메라를 목에 걸고 물을 건너다 그만 빠지고 말았습니다. 허우적거리며 물에 빠진 나를 보며 웃던 가족들. 그러나 겨우 기어올라온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본 순간 굳어지던 아버지의 표정을 아직 나는 기억합니다. 이후 한참동안 아버지는 여기 저기를 다니시며 카메라를 수리하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결국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엔 꽤나 좋은 카메라였다고 기억하는데, 그렇게 아버지의 사진사랑은 끝났고 이후 추억처럼 가끔 쓰다듬으시는 모습을 볼 뿐이었습니다.
꼴에 아버지 필카를 몇 번 만져봤다고. 5700을 받아 처음으로 뷰파인더를 볼 때 이미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SLR을 시작했지만요.
이젠, 젊은 날은 단지 추억으로 남았을 뿐인 아버지. 카메라를 메고 여행을 떠나시던 그 시절은 나와 내 형제들을 위해 바쳐졌고 남은 것은 벗겨진 머리와 불룩해진 배와, 그리고 낡은 카메라 한 대입니다.
나, 아버지께 께 꼭 드리고싶은 선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고급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비싸지 않더라도,
아버지께 멋드러진 수동 카메라 한 대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십 수년 자식을 위해 버려두고 애써 외면했던 그 삶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이제 사진찍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말씀하시지만 어디 맘이 없으신걸까요? 아직 나와 형제들을 위해 더 뛰어야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치시는 것일테지요. 이제 저도 그 정도는 알만큼 자라버렸습니다.
압니다. 결코 보상이 될 수는 없겠지요. 날렵한 몸으로 촛점을 잡던 그 시절을 결코 돌려드릴 수는 없겠지요. 아버지의 사진이 끝난 것은 계곡에서 카메라가 떨어진 그 순간이 아니라 내가 자라나며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오늘도 기숙사 방녀석들과 회식을 하러 갑니다. 얼마를 쓰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사고싶은 카메라를 사고, 먹고싶은 음식을 먹고, 술마시며 웃기위해 지갑을 들고 나갑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버지의 카메라는 아직도 장롱속에 있지 않습니까?
뭐라고 하셔도, 조금씩 아껴서 꼭 드리겠습니다.
이런 건 뭐하러 사왔느냐 야단치신다고 해도, 아버지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면 참 기쁠 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 때가 되면, 당신께서 제게 처음 낚시를 가르쳐주시고 함께 낚시대를 들던 그 때처럼 근처에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가시지요.
근데,
아버지.
왜 눈물이 날까요..
남자는 울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내게 남은 모든 시간을 들여 이야기해도 다하지 못할만큼. 고맙습니다.
아버지.
오래 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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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y[양선모]2003.05.02 - 15:43 #152814감동적이네요~ 저도 부모님께서 텐디 사주신거라..더 가슴에 와닿아요!
저도 어버이날 부모님을 감동시켜드릴만한 그 무언가를 찾아야 겠네요~
앞으로 제 색시 될 이뿐 그녀랑 의논 좀 해봐야 게써요!!
오늘 점심 먹으면서 저의 아버지 칭찬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쪄~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암튼 부모님께 효도합시다!!!^^

박상현(서누기) 님의 최근 댓글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2006 12.0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5 08.22 ggggggggggg 2005 06.16 비룡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령회에 비룡님도 가입하시죠.. 2005 04.16 전 이제 리플달기조차 민망할 정도입니다. 카메라를 마지막으로 만져본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니까요..그래도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것은 올라오는 사진과 글들을 매일 보기 때문입니다. 조만간에 유령회원 번개 한번 어떨까요? 꽤 많은 인원들이 모일 것 같은데.. 2005 04.15